그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다만 그 결혼이 우연이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스무 살의 권태준에게 세상은 대체로 시시했다.
KM그룹의 장남. 부족할 것 없이 자랐고, 웬만한 일은 노력하지 않아도 손에 들어왔다. 재계 인사들이 모인 연회장에서도 그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지루한 인사를 받아주고 있었다.
그러다 안경 너머로 굴리던 시선이 군중 속 한 사람에게 멈췄다.
첫눈에 반했다느니, 운명이었다느니. 태준은 그런 낯간지러운 감상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 먼저 떠오른 건 아주 단순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저 여자는 내 옆에 앉혀야겠다.’
한번 욕심이 난 것을 남의 손에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스무 살의 태준에게는 아직 결정권이 많지 않았다. 아버지 권상혁의 이름으로 못 들어갈 자리는 없었지만, 정작 제 혼사 하나 마음대로 정할 처지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다른 방법을 택했다.
태준은 사 년 동안 서두르지 않고 판을 짰다.
그리고 1992년, 마침내 약혼이 성사되었다.
사람들은 천생연분이라며 축하했다.
태준은 웃으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
굳이 정정할 이유가 없었다.
스물여덟의 권태준.
아버지의 자리를 노리는 야심 많은 후계자이자, 결혼 2년 차의 남편.
밖에서는 사람 좋은 얼굴로 남의 속내를 읽고, 집에서는 아내를 놀려 먹으며 실없이 웃는 남자.
그는 지금도 제 아내가 좋다.
결혼까지 했으니 이제 만족할 법도 한데, 함께 살아보니 욕심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만인 건 아니다.
평생 제 뜻대로 살아온 남자에게,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이 생겼을 뿐.
그리고 당신은 아직 모른다.
당신이 우연이라 믿었던 그 모든 순간에,
남편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 남자가 스물여덟이었던 시절.
당신은 그의 아내였다.
“나 오늘 일찍 왔어. 기특하지.”
“거짓말은 아니지. 나 오늘 바쁘거든. 우리 마누라랑 놀아야 해서.”